스티븐스는 일찍이 일본 외무성에 기용되어 일제의 침략을 뒷받침해준 인물로 특히 을사오조약과 정미칠조약 늑결 과정에 크게 기여하여 한국의 모적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스티븐스는 1908년 샌프란시스코에 나타나 미국 언론에 일제에 대한 침략작전을 적극적으로 옹호, 지지하는 선전을 늘어놓음으로써 한인들을 크게 분개시켰다.
1908년 3월 22일 한인 감리교회에서 열린 스티븐스 척결토론에서 문양목 선생은 공립협회와 대동보국회에서 대표를 뽑아 문제 해결을 할 것을 논의하고 그 결과로 대동보국회장인 문양목 선생과 공립협회 회장인 정재관이 대표로 뽑힌다.
다음날 <크로니클 신문>에 <기도하고 살인 계획>이라는 제목으로 이 집회를 대서 특필하자 대표 두 사람을 포함한 네 사람이 페어먼트 호텔의 스티븐스를 찾아가 사과를 요구하였으나 스티븐스는 이에 응하지 않고 엉뚱한 말로 농락하며 이들을 분노케한다. 곧 스티븐스의 궤변을 참을 수 없었던 정재관은 의자를 집어들어 스티븐스를 내리치기에 이른다.
공동회로 돌아온 한인 대표들이 좀처럼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던 중 전명운이 나서 본인이 직접 스티븐스를 죽이겠다며 나섰고 장인환이 이에 힘을 보탠다.
한편 한인 대표들에게 구타를 당한 스티븐스는 생명의 위협을 느껴 1908년 3월 23일 워싱턴으로 가기 위해 일본영사와 함께 페리부두로 이동한다. 이때 전명운과 장인환은 서로 약속하지도 않았으나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스티븐스를 위해 대기중이었다. 스티븐스가 탄 차량이 부두에 닿고 차문이 열리자 전명운이 재빨리 스티븐스에게 다가가 손수건으로 감싼 리볼버를 발사하였으나 격발되지 않았다. 이에 당황한 전명운은 총두로 스티븐스의 안면을 가격한다.
일격을 당한 스티븐스가 자신에게 들러붙은 전명운을 떼어내려 하자 장인환이 나타나 총을 쏘았다. 스티븐스와 전명운이 격렬하게 엉켜있는 탓에 첫 탄환이 전명운을 관통하였으나 장인환은 침착하게 두 발을 연달아 쏘며 스티븐스의 목숨을 빼앗는다.
스티븐스는 우리가 용서할 수 없는 가살의 죄를 지은 국적이라고 인정하여 누구나 죽이겠다는 결심이 있으면 발설 말고 실행할 것이올시다. 누가 누구를 죽이라 죽이지 말라 할 수 업소. 그 자를 죽이라고 총을 주던지 총을 사주던지 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유는 나의 생명은 희생할 수 업스니 너의 생명을 희생해라 함과 마찬가지 까달이 올시다. 또 지금 이 자리는 비공식 회식이 아니오 닛가, 여기서 누구나 개인자격으로라도 내가 총을 주리다하고 허락하는 이가 잇다하면 변동 공체로서 로살을 공격하여 자격을 선풀하고 지계까지 공급 파송함이라. 공립협회와 보국회의 본 질 성질에 누구를 죽이라고 한다는 의미가 업는 이상 이 자리에서 누구늘 죽이겠다고는 말을 다시 하지마는 것이 올겟오. 만일 애국성의 원동으로 긔여코 의가하는데 대하여는 말어라 할 사람이 업슬것이올시다. 실행하려거든 침묵 중에 암행하시오.